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왔다면 추천하는 관람 장소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왔다면 추천하는 박물관 : 국립 미술관, 에비타 박물관 둘러보기 사전 정보
아르헨티나는 볼거리가 풍부하다. 그러니 수도인 부에노스 아이레스가 여행하기 좋은 도시라는, '어머! 여기는 꼭 와봐야 해'라는 말은 너무 많이 들은 터라 식상할 정도다. 그러다 보니 단지 그곳을 방문하는 것에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의 확장을 유도하는 여행을 추구하는 여행자들이 많아졌다.
이번 포스팅은 그런 당신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관광 명소 두 곳을 준비했다.
내가 그곳에 도착했을 때 큰 감명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분명 미리 사전 정보를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왕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여행 왔다면, 국립 미술관과 에비타 박물관에 가 볼 예정이라면, 도움이 될만한 포스팅이 될 거라 생각한다.
국립 미술관 Museo Nacional de Bellas Artes
이곳에 가야 할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작가들의 작품들이 즐비하고, 무료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라 레콜레타 공동묘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점이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여행을 왔다면 반드시 들렸을 이곳에서 몇 시간 동안 태양에 시달렸다면, 미술관만큼 좋은 피난처도 없다. 선선한 에어컨 바람에 몸을 맡긴 채 긴 호흡으로 그림을 감상해보는 것도 좋다.
네임드 화가들의 향연
이곳에 걸린 작품들은 상당히 높은 이름값을 자랑한다. ‘빛의 예술가’라고 알려진 램브란트, 인상주의 창시자인 프랑스의 에드가 드가, 스페인 천재 화가 피카소.
서양 미술사에서 가장 위대한 화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빈센트 반 고흐, 피카소에게 영향을 줬다는 고갱을 비롯해 루벤트, 로댕, 샤갈 그리고 스페인 3대 화가로 꼽히는 고야와 엘 그레꼬의 그림을 감상할 수 있다. 아르헨티나 출신 작가의 작품수는 이곳이 가장 많다.
나는 박물관 내 전시된 작품의 사진을 찍는 타입이 아니다. 단 한장도 찍지 않을 때가 대부분이다. 박물관에서 만난 그림이 왠지 생동감 있다고 해야 할까? 나만 그런지는 모르겠다.
만약 이곳에 갈 예정이라면 자세히는 아니더라도, 어느 방식의 화풍을 추구하는지 정도만 봐 두고 가도 좋다. 아니면 얼마나 유명한지 정도만 알고 가도, 스윽 지나치지 않고 한 번의 눈길을 더 주게 된다.
무료!!
비용도 무료다. 아르헨티나가 국민들의 예술성 함양을 위해 얼마나 신경 쓰는 대목인지 알 수 있다. 이 정도의 작가 라인업이면 미술관 측에서는 쏠쏠한 이익을 볼 수 있을 텐데, 우리도 이런 무료 박물관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대부분 라틴국가처럼 월요일은 휴무이고, 11시~20시, 주말에는 10시~20시까지 개장한다
참고로 무세오 museo는 박물관, 나씨오날 nacional은 국가의, 베야 bella는 아름다움, 아르떼 arte는 예술이다.
에비타 박물관
중미의 페미니즘을 선도한 사람이 멕시코의 프리다 칼로라면, 남미에는 아르헨티나의 에바 페론이 있다. 에바 페론은 아르헨티나의 가난한 사람을 위해 일평생을 바쳤고, 아르헨티나인이 가장 사랑하는 여성이다. 스페인어에는 문미에 ito/ita를 붙여 애칭처럼 사용한다.
만약 스페인어권을 여행했거나 스페인어를 배웠다면 뽀끼또 poquito라는 단어를 들어봤을 것이다. 이는 약간이라는 뜻의 뽀꼬 poco를 좀 귀엽게 말하는 투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를 사람에게 적용하면 애정의 대상이 된다. 그러니 Eva + ita = Evita 가 되는 것이다. 이름에서 볼 수 있듯 여전히 그녀는 추앙의 대상이다.
하지만 살아서 받은 사랑에 비해, 죽은 그녀는 많은 고난을 겪어야만 했다.
에바가 에비타가 되기까지
에바는 부유한 농장의 딸로 태어났다. 하지만 그녀의 어머니는 정부가 아닌 탓에 아버지로부터 버림받고 비참한 삶을 이어갔다. 다행히 친모의 가족들로부터 도움을 받았고, 연예인 및 성우로 인기를 얻게 된다.
1944년 아르헨티나 서북부의 산 후안에서 지진이 발생한다. 6천 명의 목숨을 앗아간 최악의 사건으로 당시 노동부 장관으로 있던 남편 후안 페론을 만난다. 첫째 부인과 사별한 후안은 에바에게 금세 빠져버렸고 그 둘은 결혼에 이른다. 그렇게 가난했던 여인은 영부인이 되며, 신데렐라 스토리의 주인공이 된다. 그리고 다음 해 후안은 대통령 선거에 뛰어든다.
무뚝뚝한 군인 출신 정치가 곁의 예쁘고 마음 착한 여인의 등장은, 아르헨티나 사람들을 열광시켰다. 이때 그녀에게 에비타라는 애칭이 붙기 시작한다. 그녀는 소외받는 하층민들을 보살피고 특히 아동 관련 복지 정책을 추진했다.
에비타, 별이 되다
행복한 시간도 잠시, 그녀는 자궁암에 걸린다. 부통령으로 지명받기도 했지만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그녀를 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았기에 정치 생활이 쉽지는 않았다.
결국 후안은 재선에 성공하고, 그는 아픈 에바를 기어이 영적 지도자 위치에 올려놓는다. 그녀는 열광하는 국민들 앞에 병을 숨기다가 결국 숨을 거둔다. 그녀의 나이 겨우 33세.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한 그녀
많은 아르헨티나 국민들의 배웅 속에서 그녀는 잠에 들었다. 노동자와 가난한 이들 그리고 아동들을 구하기 위해 평생을 애쓴 그녀의 마지막을 지금까지도 애도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죽어서도 국민들 가슴에 남아 죽지 않던 그녀는, 정권을 잡은 세력에게는 큰 위협이었다. 결국 군부는 아르헨티나 국민들 가슴속에서 ‘에비타’의 이름을 없애기 위해 그녀의 시신을 이탈리아로 빼돌린다. 시신은 후안의 세 번째 부인이 대통령에 집권했을 때, 비로소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녀를 잃는 국민들의 상심이 결국 그녀를 미라로 만들었다. 그러니 어찌 편히 쉴 수 있었을까.
후안이 실각한 후 군부에서 미라의 시신이 에바인지 확인하기 위해 귀와 손끝을 자르기도 했고, 코와 발가락 등 훼손된 부분이 발견되었다. 이동중에 파손된 것인지 고의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원치 않은 여정을 마친 그녀의 시신은 현재 라 레콜레타 공동묘지의 가족묘에 안장되어 있다.
엇갈린 평가
그녀를 추앙하는 사람들을 통해 긍정적인 평가를 확인 할 수 있다. 사회에서 보장받지 못하는 사람들과의 빈부격차가 그나마 줄어들었고, 무상교육과 사회복지제도를 아르헨티나에 뿌리내리게 했다. 또한 그녀로 인해 유명인들의 기부문화가 확립되었다는 평을 받는다. 무엇보다 그녀는 남미의 페미니스트라고 불릴 정도로 여성 지위 신장 및 양성 평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반대의견도 존재한다. 페론 부부는 가난한 이들의 분노와 지지를 이용하여 사회를 지속적으로 혼란 속에 빠트렸고, 이는 후안 페론의 독재 정권의 원동력이었다는 평가가 있다. 만약 에비타의 행위가 후안의 정권 연장을 위한 것이라면, 그녀가 걸어온 길의 진위는 재 평가받을 수밖에 없다.
기회가 된다면 차후 포스팅에서 더 다루겠지만, 일부에서는 에바의 페론주의 Peronism을 파시즘으로 분류하기도 한다는 점에서, 그녀의 평가가 극명히 갈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개인적으로(너무도 개인적으로) 아르헨티나에 여행을 간다면 방문해봤으면 좋을 박물관 두 개를 소개했다. 여행은 아는 만큼 보인다. 아르헨티나의 모국어인 스페인어를 배우고 가면 좋겠지만, 분명 여건이 어려울 수가 있다. 그렇다면 이런 사전 정보를 알아보고 가는 것을 추천한다.
층간소음으로 갈등을 빚는 사람들에게 위층의 아이에게 음식을 가져다주는 방법이 있다. 그 아이의 얼굴을 알게 되면 훨씬 이해심이 커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그러니 한번 읽어보시고, 무심코 지날뻔했던 아르헨티나 국립박물관 또는 에비타 박물관에서 좋은 시간을 가지시길.
자료 출처 일부는 제 저서 '세계사를 뒤흔든 스페인의 다섯 가지 힘'입니다. 스페인어를 공부하시거나 스페인 또는 유럽사에 대한 인문 지식을 즐기신다면, 가볍게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스페인어와 스페인 역사 및 문화에 대한 인문학을 함께 공부하고 싶다면, 아래 커리큘럼도 참고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