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 게바라가 자란 곳 알타 그라시아, 가브리엘 두도이스 공방, 천재 작곡가 마누엘 데 파야, Santurido de la Virgen Lourdes 여행
오늘은 아르헨티나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코르도바, 그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한 영웅의 유년 시절로 가보려 한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체 게바라에 대한 내용들을 알지 못한 채, 그저 미국에 대항한 '게릴라 군대 장군'정도로 알고 있다.
그를 처음 접했을 때, 내가 너무 어렸던 탓일까. 그의 삶은 가슴에 알 수 없는 뜨거움으로 남겨졌다. 아르헨티나 출신임에도 아메리카에 혁명의 불씨를 지펴낸 영웅의 이야기를 목격했던 스물세 살의 무더운 여름날을 기억한다.
처음 혁명군이 되겠다고 마음먹었던 멕시코, 그가 처절하게 지켜냈던 쿠바, 그가 죽은 볼리비아를 거처, 이제 그의 시작인 아르헨티나에서 체에 대한 여정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알타 그라시아로 가는 방법
코르도바에서 알타 그라시아로 가는 방법은 간단하다. 터미널에 가면 버스 앞면에 Alta Gracia 라고 대문짝만 하게 쓰여 있다. 체의 발자취를 따라 여행하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에 그곳에 가는 버스도 많은건지 모르겠으나. 한 시간에 한 대씩 있다고 한다.
알타 그라시아 Alta Gracia의 뜻
알타 alta는 스페인어로 ‘높은’, 그라시아 gracia는 ‘은혜’라는 뜻이다. 스페인어를 모른다해도 아르헨티나를 여행하고 있다면 그라시아스 Gracias가 ‘고맙습니다’라는 걸 알 수 있다.
알타 그라시아와 체의 관계가 궁금했다. 버스 안에서 지나치는 풍경 사이로, 전날 숙소 직원과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왜 알타 그라시아야? (아르헨티나가) 체(게바라)한테 큰 고마움을 느껴서야?”
“아닐걸? 그저 그가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오래 머문 곳일 뿐이야”
“맞아. 그곳은 체가 태어난 곳도 아니잖아. 죽은 곳도 아니고”
“그래. 그냥 동네 이름이야. 높은 은혜. 그냥 체가 높은 은혜 속에서 잠든 것뿐이지”
알타 그라시아스에서 가볼만한 곳
이곳에는 체의 생가 외에도 가볼 만한 곳이 많다. 스페인 출신의 천재 작곡가라고 칭송받던 마누엘 데 파야 Manuel de Falla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박물관과 가브리엘 두도이스 Gabriel Dudois의 공방도 있다.
체의 생가 입장권과 이 두 곳의 입장권을 한 번에 구매할 수 있다. 한 장만 구매할 경우 전체 금액의 80%였던 걸로 기억한다. 기왕 온 김에 구경해보는 것도 좋다.
Santuario de la Virgen Lourdes에 가보는 것도 추천한다. santuario는 스페인어로 '신전', virgen은 '동정녀' 또는 '마리아'다. 마치 귀족의 정원 같은 곳을 지나면 마리아와 성당을 만날 수 있다.
체 게바라? Che Guevara
‘체 게바라’라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사실 그는 알타 그라시아스가 아니라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로사리오 Rosario에서 태어났다. 체는 어릴 때부터 천식이 심했기 때문에, 그의 건강을 걱정한 부모님은 많이도 이사를 다녔다.
하지만 누가 알았을까? 병약한 그가 세상을 불공정한 손아귀로부터 구해냈을 줄을.
그의 업적을 간단히 말하자면, 멕시코에서 혁명동지이자 쿠바 지도자인 피델 카스트로를 만나 쿠바 혁명에 뜻을 세운다. 그들은 국민을 수탈하는 정부군에 맞서 결국 쿠바를 구해낸다. 그리고 쿠바에 안정적으로 혁명이 내려앉도록 노력을 쏟는다.
그래도 됐다, 체는 그곳에서 그가 내던졌던 노력의 대가를 누려도 됐었다. 하지만 그는 혁명이 필요한 다른 곳으로 떠난다.
그는 볼리비아로 떠났고, 정부군과의 교전 끝에 포로로 잡힌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비야그란데 Villagrande에서 처형된다.
사람들은 왜 체를 따르는가?
정치는 야생이다. 어느 것도 완벽하게 옳지도 않으며 틀리지도 않다. 때문에 체를 둘러싼 사람들은 체를 열렬히 옹호하기도 하지만, 그만큼 비난하기도 한다.
체는 부당하고 수탈당하는 국민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목숨을 던져 싸웠다. 하지만 전투는 쉬이 끝날 줄 몰랐다. 그의 ‘게릴라 전술’ 때문에, 정부군은 혹시나 있을 게릴라를 시민 속에서 찾아내려 애썼다. 너무도 많은 무고한 사람들의 삶이 쓰러졌고, 긴 전쟁은 체가 목숨 던져 싸웠던 의미마저 퇴색시켰다.
이 극명한 분위기는 질문 하나로 알 수 있다.
"¿Qué te parece Che Guevara? 체 게바라를 어떻게 생각해?"
그는 쿠바에서 영웅이다. 오죽하면 아바나 백작이라고 불렸을까(아바나 Havana는 쿠바의 수도다). 하지만 일부 볼리비아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자유라는 숭고한 가치를 위해 너무 많은 피를 흘렸기 때문이다. 무고한 시민의 계속된 희생은, 오히려 그들의 위해 희생하는 체를 등지게 했다.
시간이 지나 그의 발자취는 사람들의 마음을 쥐고 흔들어 버렸다. 천식으로 고통받는 나약했던 소년이, 의사라는 안락을 고통받는 이를 위해 내 던진 청년을, 그리고 목숨마저 내놓은 그를, 사람들은 숭배하기 시작했다.
나는 체의 평전을 두 번 반을 읽었다. 갓 제대한 스물세 살, 갓 입사한 스물일곱, 그리고 서른인가 서른을 조금 넘겼을 때였다. 그가 했던 대로 오토바이로 남미를 횡단하고 싶지는 않았지만(오토바이를 타다 죽을뻔한 적이 있다), 그의 과거를 읽으며 세계여행을 꿈꿨다. 그리고 세상에 무언가 선한 영향력을 미치고 싶었다. 하지만 세 번째로 읽었을 서른 즈음의 내 자신은 너무도 초라했다.
그때의 나는 업무에 치여, 사람들과의 스트레스에 머리를 쥐어짜며 하루하루를 좀먹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체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스스로 느끼는 허탈과 자괴감에 결국 책을 집어던져버렸다.
하지만 결국, 그가 평생을 바친 곳을 지나, 죽은 곳을 거쳐, 혁명가의 꿈을 키웠던 이곳에 도달했다. 어쩌면 책을 집어던진 건, 그처럼은 아니더라도, 나답게 살고 싶다는 발버둥은 아니었을까. 물론 여전히 찾고 있지만.
그가 탔던 오토바이의 이름은 포데로사 Poderosa, 스페인어로 '힘 있는 자' 또는 '권력자'라는 뜻이다. 체는 포데로사가 강력한 힘을 갖고 그를 세상 모든 곳을 가고자 했다.
처절한 과정을 통해 쿠바는 혁명에 성공했고, 볼리비아도 마찬가지다. 체를 보며 모두를 만족 시킬수 있는 방법이 과연 있었는지 의문이 들었다. 물론 대다수의 사람들은(볼리비아인 조차) 그가 탐욕스러운 자들로부터 이들을 구원했다고 믿고 있는 것 같다. 고통받는 이들을 구원했으니 '높은 은혜_알타 그라시아'에서 그를 만나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코르도바는 파티의 도시다. 그곳에 있으면 내가 남미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르셀로나에 있는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만약 이곳에 올 예정이라면, 클럽이나 바에 갈만한 복장 하나 정도 있으면 좋다.
'2년의 세계여행 > 아메리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가볼만한 곳 ; 한인마트, 일본정원, El Ateneo, 플라사 마요르 아르헨티나 경제 위기의 원인, 남미 역사 공부 (0) | 2020.04.10 |
---|---|
남미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왔다면 추천하는 박물관 : 국립 미술관, 에비타 박물관 사전 정보 관전 꿀팁 역사 공부 (0) | 2020.04.09 |
음식의 도시 아르헨티나 살타. 엠빠나다와 한인마트 라면까지 산 베르나르드 전망대와 바실리카 대 성당 (0) | 2020.04.07 |
아르헨티나 멘도사 혼자 자전거 투어하기 그리고 와이너리 여행 팁 (1) | 2020.04.04 |
발 아래 다른 세상 볼리비아 우유니 소금사막 (0) | 2020.03.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