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의 세계여행/아메리카

발 아래 다른 세상 볼리비아 우유니 소금사막

페드로jr 2020. 3. 10. 11:48
육각형 소금사막

 이주 간의 기관지염이 지독히도 날 괴롭혔다. 연두색의 가래가 나오고, 기침을 하면 죽을 듯 고통스러웠다. 건조한 이 나라를 당장이라도 뜨지 않으면 낫지 않을 거라 했다. 그렇다고 우유니를 지나칠 수는 없었다. 적어도 볼리비아에 온 이유의 5할은 이곳에 오기 위함이었으니까 말이다.


 건기의 우유니는 황량함 그 자체다. 식당도, 숙소도 비어있는곳이 종종 보인다. 평상시 같으면 내가 바라던 풍경이라며 거리를 활보했겠지만, 몸이 아프니 달리 감흥도 없다. 관광객이 많지 않으니 이곳은 생기를 잃은 듯 보인다. 하지만 투어사를 들어가 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투어사마다 사람들이 들어차 있다. 동네를 한바퀴 돌 겸, 가격도 알아볼 겸 투어사를 돌아보다가 많은 한글이 쓰여있는 곳으로 들어갔다. 이게 웬걸, 공짜로 커피를 준다. 그토록 많은 투어사를 거쳐봤지만 커피를 공짜로 주는 곳은 처음 봤다. 어지간이 많은 한국인을 상대했나 보다.


 그는 한국어로 말하고 나는 스페인어로 말하는 웃긴 상황이 연출되었다. 아시아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기에 비쌀 줄 알았지만 괜찮은 가격이다. 사실 조금 더 싸게 했다, 다른 이들에게 말하지 말라는 약속과 함께.


 투어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데이투어, 선셋투어, 스타라이징 투어. 그곳에 가는 거리가 있기 때문에 주로 데이+선셋 을 하고 스타라이징을(별보는 투어) 별도로 한다고 했다.

다리가 길어보인다

 건기인지라 물이 없긴 없다. 건기 중 초 건기인 시즌이라 혹시 물이 없더라도 그건 투어사의 책임이 아니라며 몇 번을 얘기했는지 모른다.

 

사실 나는 물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광활한 소금사막, 마치 일부러 만든 듯한 육각형의 바닥, 그걸로 충분했다. 배우자 얼굴은 일 년, 몸매는 삼 년이라고 했던가. 광활한 소금 사막도 언뜻 질리기 시작할 때쯤, 가이드가 차를 멈추고 이런저런 물건을 꺼낸다.

치즈 인 더 프링글스

 새하얀 소금사막에서 원근감을 이용해 찍는 사진들, 하나하나가 인생 사진이다. 모두들 쭈뼛하는 기색 없이 가이드의 요구에 따르니, 신이 난 가이드는 더욱더 과감한 포즈를 요구했고, 모습은 마치 프로페셔널 사진작가와 다름없었다. 모두들 그 마음에 동했는지, 그의 말을 못 알아들을 때면 나에게 다시 물어봤다.

"페드로. 지금 가이드가 뭐라고 한 거야?
이렇게 하라고? 아니면 이렇게?"

 마치 촬영장의 PD처럼 가이드가 말하면 다시 내용을 전달했다. 모두들 혼신을 다해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어찌나 재미있던지, 우유니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가이드' 라며 누군가 했던 말이 기억났다.

아오 쏘 포겐

 

아따따뚜겐

 

우유니 조단

 다행히 물이 고인 곳이 있었다. 데칼코마니처럼 발 밑에 내가 있었다. 어쩜 이렇게 선명하게 모든 걸 반사시킬 수 있을까? 지나가는 시간이 아까워 다들 사진 찍는데 한창이다.

 

최고의 단체 샷

 투어를 끝나고 돌아가려는데, 투어 사장이 날 부른다. 가이드가 이렇게까지 즐거웠던 적은 처음이라는 것이다.
"세뇨르 페드로. 혹시 여기서 일해볼 생각 없어요?"
"네?"
"한번 일해봐요. 돈은 많이 줄 수는 없지만, 혹시 남미에 오래 있을 거면 일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예요. 본인이 데려오는 경우에는 추가 비용도 줄게요."
"아네요. 저는 좀 더 여행을 할 생각이에요. 좋게 봐주셔서 고마워요"
"아깝네요. 그 정도 영어랑 스페인어면 어디 가서도 잘할 거예요. 몸조심이 여행 잘하세요"  

 인정받는 기분, 아마 내가 라틴국가를 여행하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예전 아주 예전, 스페인어를 하다 슬럼프가 왔다. 아마 공부를 시작하고 일 년쯤 되었을 때다. 우연히 아는 형과의 대화가 문제였다.
"스페인어 계속해?"
"응. 근데 거의 공부 안 해"
"저녁 먹었어? 를 스페인어로 뭐라고 해?"
"comiste la cena? comia la cena? 잘 모르겠네"
"뭐야. 하나도 안 했고만"

 그의 말이 맞다. 정확한 대답을 했으면서도 내가 정확한지는 몰랐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생각해도 어디 가서 스페인어 공부했다고 말하기 부끄러운 실력이었으니. 

 

물론 변명 거리는 있었다. 매일 야근에 주말근무, 그리고 잦은 회식. 핑계를 대자면 사방이 핑계였다. 그렇다고 그것이 정당화될 수는 없었다.


'홀로서기 하기로 하지 않았던가! 이 정도에 굴복하면 아무것도 될 수 없다'

'남들 할거, 놀 거, 마실 거, 즐길 거 다 하면 절대 목표에 다다를 수 없다'

그 후, 꾸역꾸역 일 년을 더 했다. 여행을 하면서 실력이 급격히 늘기도 했지만 결국 꾸준하게 해왔기에 지금의 호의와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하나의 언어를 더 할 수 있게 되자, 외국어 공부를 하거나 과외를 했던 이들에게 이런 말을 해주곤 한다.

열심히만 하면 된다.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간 다다르게 되더라.